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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종플루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함의

원래 미국의 신종플루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후 바로 올리려던 내용이었는데 그만 사정이 생겨서 한동안 포스팅을 유보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현재 상황을 살펴보실 수 있는 좋은 정보가 될 겁니다.

미국 신종플루 국가비상사태 선포의 함의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신종플루의 창궐을 이유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번 비상사태 선포는 미국내 신종플루 확산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즉 미국내 독감 증상을 보이는 외래환자 통계를 인용해 보면 (아래 그림 참조), 올해 9월과 10월에 외래환자에서 차지하는 독감 증상 환자의 비중이 2007년과 2008년의 동일 기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예년의 경우 9월과 10월이라면 1% 남짓한 환자만이 독감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반면, 올해는 이미 10월에 전체 외래환자중 독감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의 비중이 7%를 넘어 버렸다. 그리고 그 증가추이가 아주 가파르다.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닥칠 시기도 아닌 점을 감안한다면 다가올 12월과 1월에 어느 정도의 피해상황이 발생할지 가늠하기 조차 쉽지 않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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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일부터 2009년 10월 17일까지 주간 외래환자 독감증상 통계자료

이처럼 독감을 호소하는 외래환자의 급증외에도 폐렴과 독감으로 사망하는 어린이의 수는 이미 예년 수준을 상회할 지경이 되었다 (하단 그림 참조). 초록색 막대가 예년의 독감으로 인한 소아 사망자 통계치이다. 보라색과 노란색이 이번 신종플루로 인한 소아 사망자 통계이다. 예전이라면 사망자 발생이 시작할 시기가 한참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신종플루로 인한 소아 사망자는 이미 평년의 최고 사망자수를 상회하고 있다.

독감 관련 소아 사망자 주간 통계 (2005-06년 시즌부터 현재까지)

이와같은 신종플루 감염자와 사망자의 급증이 이번 비상사태 선포의 근본 배경이라고 보는 해석이 맞기는 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그밖에도 몇가지 고려사항이 더 있다. 우선 비상사태 선포 발표문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번 비상사태 선포문의 핵심은 다음 한문장에 전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전략)...미국내 의료기관들이 비상 계획을 수행하는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연방정부가 지정한 규정들을 임시로 유예할 수도 있다...(후략) (...the temporary waiver of certain standard Federal requirements may be warranted in order to enable U.S. health care facilities to implement emergency operations plan...)"

즉 지난 봄, 멕시코에서 신종플루가 발생한 이래 신종플루 백신 개발을 포함한 다양한 방역 노력이 있어왔지만, 워싱턴 특유의 관료주의과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관련규정 때문에 신종플루 백신의 개발 및 생산 지연이 심각할 정도였다. 더불어 각 지역단위 병원들이 제한된 인력과 시설이나마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크고 작은 조항들이 산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면, 미국은 국가가 국민들의 의료서비스를 직접 책임지는 시스템이 아니다. 따라서 의료보험이 없는 환자들의 경우 의사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다만 종합병원 응급실의 경우 의료보험이 없어도 일단 환자를 받아 준다. 따라서 다수의 환자들은 신종플루 증상을 보일 경우 소아과나 가정의를 찾기보다는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바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이런 현상들은 기존에 가뜩이나 부족한 응급실 인력과 장비에 즉각적인 업무증가를 초래한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멤피스시 소재의 르바나 소아병원의 경우 병원 주차장에 대형텐트를 설치한 뒤 여기서 신종플루로 찾아오는 환자들을 일차적으로 점검해서 응급실로 이송할지 아니면 간단한 처방전을 써준 뒤 귀가조처 시킬지를 결정하고 있다. 이런 발빠른 조처는 전체 병원의 업무효율 개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식으로 병원건물 외부에 간이진료센터(triage center)를 설립하는 것에 대한 정부 규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내 다른 종합병원들도 병원 업무효율 개선을 위해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이번 비상사태 선포는 이런식의 간이진료센터가 병원건물에서 일정거리 이내에 설치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임시유예함으로서 병원 주차장이나 인근 학교건물의 식당등에 간이진료센터가 설립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 즉 예전같으면 이런식의 간이진료센터에서 치료되는 환자들의 경우 정부가 재정보조를 해주는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 환자들의 치료비를 정부가 지급해 주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이런 경우도 정부가 책임지고 치료비를 지불할테니 염려말고 진료에만 집중하라는 뜻인 것이다.

이 밖에도 의료진과 의료장비의 이동이 좀 더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고 더불어 대중들에게 신종플루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금 환기시켜준 소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조처가 현재 상황을 특단적으로 변화시킬 획기적인 내용들은 아니다. 이미 연방정부 수준에서는 더 이상 별도의 조처를 내릴만한 것이 없는 상황에서 각 지역의 의료진과 병원 설비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길을 터 준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미국 현재의 대부분 전문가들과 주류언론도 동일한 상황인식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 이번 조처를 오해해서 심각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추가로 이번 비상사태 선포의 또 다른 효과를 들어보겠다. 현재 가용할 수 있는 신종플루 치료제라면 타미플루와 리렌자 정도이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10/23) 비상사태 선포와 발맞춰 미국 식약청(FDA)이 추가로 퍼라미비어(Peramivir)라는 약품을 중증의 신종플루 환자들의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비상사용허가(Emergency Use Authorization)를 내주었다. 타미플루가 경구투여제이고 리렌자가 흡입방식을 이용하는데 반해 퍼라미비어의 경우 타미플루와 리렌자로 치료가 되지 않거나 경구투여나 흡입이 불가능한 환자들에게 정맥주사를 통해 투여된다. 적절한 시기에 안성마춤의 신약이 비상사용허가를 받은 것이다. 인류의 신종플루와의 전쟁에 아주 요긴한 신형무기가 공급된 셈이다.

현재 미국 현지의 관심은 부족한 신종플루 백신에 쏠려있다. 초창기에 미국 보건사회복지부는 10월경까지 1억 2천만명 분량의 백신 공급을 예상했다가 최근에는 4천만명 수준까지 백신공급 예상물량을 낮추었다. 그런데 정작 10월이 다 끝나가는 마당에 실제 공급물량은 3천만명 분량도 되지 못하는 실정이라 현재 미국 의회는 보건사회복지부 성토에 열을 올리고 있다.

더불어 신종플루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견해도 1/3정도의 미국시민은 신뢰하는 편이고 1/3정도는 불신, 그리고 나머지 1/3정도는 판단유보인 상태이다. 이런 시민들의 반응이 오히려 부족한 백신공급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제한된 공급물량이 안전성을 신뢰하는 그룹에게 먼저 제공이 되고 이들에게 별다른 이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시간을 지나면서 밝혀지면 차차 추가로 공급되는 백신이 판단유보 그룹들과 궁극적으로는 불신그룹들에게까지 순차적으로 공급되지 않을까 예상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언론에서는 손세척, 드라큐라 기침법같은 기초적인 신종플루 예방법 외에 특정 음식이나 영양제 섭취같은 것들이 신종플루 예방법으로 소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이와 반대로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민간요법이나 의료효과가 없는 상업적 제품들의 리스트를 밝혀 시민들에게 비과학적 정보가 제공되는 것을 막는 보도나 정부 발표가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 많은 한국언론이 계절성 독감 예방주사를 접종한 다음 발생하는 사망이나 부작용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반면 미국의 경우 매년 백만명 이상이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80여만명에게 뇌졸증이 발생하며 90여만명이 유산을 한다는 자료를 제시함으로서 백신접종후 심장병이나 뇌졸증, 혹은 유산이 발생한다고 해서 이들간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판단할 것은 아니라는 점을 꾸준히 강조하며 보도한다.


추신 1: 첫번째 그림은 지난주에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이제 외래환자중 인플루엔저 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8%를 넘어섰습니다. 평년이라면 대략 1% 남짓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제 겨우 11월에 들어섰는데 저 정도이니 과연 12월이나 1월에 얼마나 신종플루가 맹위를 떨칠지 걱정이 됩니다.


추신 2: 하도 국내에서 '뭘 먹으면 좋더라' 라는 기사가 많이 나오길래... 속으로 웃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켈로그라고 콘프레이크 회사가 자신들 제품을 먹으면 면역력이 증가된다고 광고했다가 전문가들의 융단폭격을 받고 있습니다. (면역력 증강 주장 켈로그 전문가들의 비판에 직면) 아래 사진이 바로 문제의 콘프레이크 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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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미국 식약청에선 최근에 기업들이 저런식으로 자사 제품이 건강에 좋다(Smart Choices)는 레이블을 붙이는데 우려를 표명했고 결국 업계에선 자발적으로 그런 표시를 삭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신종플루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참에 물건 몇개 더 팔아먹으려고 국민들에게 옳바르지 못한 정보를 유포하는 기업들에게 적절한 규제가 가해져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