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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의 추억, 괴물의 탄생

반공의 추억, 괴물의 탄생


저는 소위 말하는 386세대입니다. 이 세대를 대학시절 민주화를 경험한 세대라는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성장환경은 정말이지 반공의 탈을 쓴 전체주의적 분위기에서 자라난 처절한(?) 세대입니다.

이 말이 무슨 얘기냐하면 자신의 표현과 사고에 대해 끝임없는 자기검열을 해야하는 시기이기도 했고 누군가의 사상 밑바닥을 의심하고 들춰보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던 시절이죠.

가령 집회를 열어 부당 노동행위를 비판하는 주장을 펼치면 당장 "왜 북한을 반대하고 김일성을 비판하는 표현이 없냐?"라는 딴지가 들어오던 시기입니다. 노동운동에 대해 얘기를 하는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자신은 북한을 반대하는 사람이란 걸 꼭 드러내 보여야 했다는 말이죠. 지금와서 보면 정말 웃긴 얘기지만 당시에는 정말 그랬습니다. 김일성 때져잡자는 표현을 안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내 맘에 안들면 다 빨갱이!!!

어제 서영석님의 '유시민 호남비토론'에 대한 비판글을 하나 썼는데 이색적인 댓글을 받았습니다.

"호남이 유시민/노무현을 당연히 지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을 일종의 대전제로 까는 것이나 마찬가지" - 미투라고라-

물론 제 글에는 그런 표현도 없을 뿐더러 저는 특정 지역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당연히(!) 지지해야할 의무 따위는 애시당초 세상에 있을 수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미투라고라님의 눈에는 자신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핵심사안 2개(?)를 건드리지 않고 글을 쓴 것이 못내 불편하셨던 모양입니다.


미투라고라님의 그런 모습을 보며 괴물을 잡으려다 괴물이 되어 버린 청년의 우화가 떠오르더군요. 시어머니 미워하다 그 시어머니의 악행을 그대로 자신의 며느리에게 물려주는 새로운 시어머니의 탄생같은 거....

타인이 표현하지도 않은 내용으로 타인을 공격할 수도 없을 뿐더러 더군다나 타인의 글 내용과 상관이 없는대도 불구하고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표현이 들어있지 않다고 그걸 증명하라며 타인의 사상의 밑바닥을 들춰보겠다고 나설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박통시절 빨갱이 때려잡자는 분위기와 뭐가 다른지...

누군가를 증오하며 자신이 점차로 그 증오의 대상과 흡사하게 변해가고 있는 불쌍한 괴물의 탄생을 지켜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