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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과 배관공 ‘조’

미국 대선 토론을 시청한 다음날 아침에,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의 정치면을 보고, 또 출근 시간에 차 안에서 듣는 좌담프로를 통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미국 정치의 건강함 그리고 미국이 왜 아직도(?) 패권국가로 살아 남을 수 있는지 하는 점의 일부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겠다고.

미국 시간으로 어제 오바마와 매캐인 입에서 20번이 넘게 나온 단어가 있습니다. "조", "배관공 조"

원래 이 배관공 조라는 사람은 지난 일요일에 오바마가 오하이오주의 토레도(Toledo)에 선거 유세를 갔다가 만난 사람입니다. 일단 그 장면부터 보시죠.

그런데 이 사람이 좀 재미있었던 건, 미국에서 배관공이면 부자는 아니죠. 그냥 중산층이나 중하층 정도의 경제 수준일 텐데, 이 양반의 의식이 좀 독특했습니다. 오바마를 만난 자리에서 뭐라고 했는가 하면, '지금 내가 근무하는 배관 회사를 내가 인수하게 되면, 내 연봉이 25만 불에서 28만 불 정도 될 텐데, 그럼 오바마 너의 세금 정책에 따르면 난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오바마로서는 좀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죠. 연봉 25만 불이면, 미국 납세자 중에 겨우 2.3%만 해당되는데, 나머지 97.7%의 사람 중에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고액 소득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정책에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이니까요. 현재 오바마는 연소득 25만불 이상 (부부 합산의 경우이고 싱글일 경우에는 20만 불 이상) 인 사람들에게 현재보다 세금을 더 물리고 일반적인 미국인들, 그러니까 연소득이 6만불 이하인 사람들에게는 지금보다 세금을 줄여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어제 대선 토론회에서는 초반부터 매캐인은 "배관공 조"를 계속 들먹이며 오바마의 세금 정책을 공격했죠.

뭐 토론회에서 오바마도 그런대로 선방을 하기는 했지만, 토론회가 끝난 다음날 거의 모든 언론 매체에서 "배관공 조"에 대한 기사가 뜨더군요. 물론 흥미위주로 이 "배관공 조"가 실제로 배관공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지난 15년간 배관공으로 일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부터 2005년 소득세(1200 불)를 제때 내지 않아서 현재 카운티 정부로부터 그의 주택이 저당이 잡혀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판국이죠.

그런데 이런 흥미위주 기사 말고도 실제로 "배관공 조"가 그의 희망대로 연소득 28만 불을 번다고 해도 연간 900불 정도만 세금으로 더 내게 될 거라는 기사(관련기사)들도 나오고 매캐인이 토론 내내 물고 늘어진 미국 내 소기업들에 추가 세금 부담이 있다는 주장도 거의 근거가 없다는 기사(관련기사)들도 나오더군요.

가령 미국 내 전체 소기업 중에 6백만 개 이하의 회사만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고 그나마 미국 납세자 중에서 70만 명 정도나 오바마의 세금 정책으로 세금을 더 내게 될 텐데, 이 70만 명 중에는 변호사, 회계사, 부동산 투자자처럼 소기업 소유주와는 거리가 먼 양반들이 태반일 테니, 매캐인의 주장처럼 "수백만 명의 배관공 조"같은 경우가 있을 거라는 얘기는 근거가 없다는 분석 기사들이 여기 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저도 잘 모르던 미국 내 사정을 덕분에 현실감 있게 제대로 파악한 하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사들을 읽으며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감세 정책들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득과 실이 있는지를 미국 언론처럼 차분히 분석해 주는 그런 언론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하는… 가령 제가 위에 예로 들은 자료들 중에 아주 세부적인 자료들은 대부분 "세금정의를 위한 시민모임 (Citizens for Tax Justice)"같은 정파와 상관없이 세금 정책을 연구하는 비영리 시민단체로부터 나오고 있죠. 우리나라에도 저렇게 차분하게 일반인들의 눈높이로 각종 세금정책이 실제 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알려주는 그런 시민단체가 있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요즘은 모든 면에 걸쳐서 우리나라의 상황이 안 좋으니 무슨 뉴스를 봐도 자꾸 고국 생각이 납니다. 앞으로 2-3년 참 쉽지 않은 세월이 될 텐데, 현 정부가 제발 지난 정부를 희생양 삼아서 현재의 난국을 물타기 하는 짓 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4-5% 경제 성장 같은 거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완전히 말아 먹어 다음 번 정부가 손을 댈 수도 없이 나라를 파산 상태만 만들지 않을 정도로만 운영해 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그냥 작은 희망 한 조각이라도 남겨 놓고 물러나길…